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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주 기자]
얼마 전 개그우먼 이수지씨가 나온 '대치맘' 영상이 화제였다. 수입차를 타고 명품을 휘감은 채 어린 아들을 학원 라이딩하는 '대치맘'의 모습은 선풍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영상 속 '제이미맘'이 착용하고 나온 명품 패딩과 가방 역시 뜨겁게 주목을 받으며 논란 거리가 되기도 했다. 이 영상이 그만큼 엄청난 반응을 얻었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들이 강남 사교육의 세계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자식 교육을 끝낸 나는 이제 더이상 '학원 라이딩'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인생은 모른다. 생각지도 않게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 셔틀버스 하원 도우미를 하게 파산면책자취업 되면서 그 세계를 잠시 엿볼 기회가 생겼다.

임시 강남 영유 셔틀 도우미... 까다로운 규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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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우리나라 6세 미만 미취학 아동의 1인당 사교육비가 월평균 30만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른바 '영어유치원'(영어학원 유치부)으로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의 월평균 비용은 154만5천원이었다. 소득 규모별 사교육비 격차는 7배에 육박했다. 교육부는 13일 이런 내용의 '2024 ibk저축은행 채용 유아 사교육비 시험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정부 주도로 유아 사교육비 현황을 조사해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사진은 이날 서울 강남구 한 영어유치원에 주차된 통학버스. 2025.3.13


ⓒ 연합뉴스




30년 고정금리카톡 알람이 울렸다. 평소 인사하고 지내는 이웃이었다.

'3월 31일 등원 1타임, 하원 2타임 시간 될까요?'
이웃 아주머니는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데, 압구정에 있는 한 영어유치원에서 셔틀버스 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아침 등원, 오후 하원 두 타임, 이렇게 하루에 총 세 번을 나가는 신용회복기금 데 가끔 볼 일이 생기면 나한테 부탁하곤 했다. 오후에 두 번이나 나가야 하는 게 좀 귀찮긴 하지만 시간당 수당이 괜찮은 편이라서 별 일이 없으면 맡고 있다.
셔틀버스 하원 도우미 일이 처음은 아니다. 예전 인천에 살 적에도 발레학원 셔틀버스에 탄 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게 벌써 7~8년 전 일이었다. 게다가 때는 셔틀버스 3대가 움직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이 운영하는 학원이었다. 아이들도 거의 다 여자 애들이었고 나이도 4살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했다.
그 발레 학원에 비하면 이번 영어유치원은 셔틀버스를 8대나 돌리는 규모가 제법 큰 곳이었다. 강남에 두 군데 지점이 있는데 요즘 불경기로 작은 학원들이 문을 닫는 바람에 오히려 이런 대형학원으로 아이들이 몰려든다고 했다. 듣자 하니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는 공부 많이 시키는 곳으로도 유명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셔틀버스를 관리하는 품도 이전 학원 때와는 많이 달랐다.
차량 기사와 셔틀버스 도우미, 학원 담당자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서 변경 사항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것은 물론, 1층 로비를 제외한 학원 실내에서는 덧신을 신어야 했고, 덧신 대신 신발을 벗거나 슬리퍼를 신는 것도 안 되었다.
셔틀 도우미들은 개인적인 일이 있는 경우 대타를 세우고 결근할 수는 있지만 미리 학원에 보고해야 했고 그것도 기간이 길어지면 좋지 않았다. 도우미가 자주 바뀌면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예전의 발레 학원은 자영업, 지금의 영어 유치원은 큰 회사였다. 회사 중에서도 근무 환경이 좀 더 까다로운 회사 같았다. 아무래도 학생들 연령대가 5~7세로 많이 어리고 강남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 같았다.
잠든 채로 영유 가는 아이
아침 등원. 오전 8시 35분, 약속된 장소에서 차량 기사님과 만났다. 내가 타는 차는 5호차로 청담 구역을 돌았다. 40분. 기사님이 차를 출발시켰다. 8시 47분부터 9시 8분까지 총 4명의 아이를 태웠다. 다들 엄마, 아빠, 혹은 이모님 손을 잡고 정해진 장소에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날은 아침에 엄마들은 한 명도 나와 있지 않고 죄다 이모님만 보일 때도 있었다.
아이와 차량에 탈 때 함께 건네 받는 학원 가방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내가 들기에도 묵직했다. 이제 막 아기 티를 벗은 5살 아이는 아빠 어깨에 파묻혀 자느라 차가 도착해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아빠한테 아이를 받아 안아 차에 태우고 안전 벨트를 채웠다. 아이는 학원에 도착할 때까지 여전히 꿈나라였다.
셔틀버스는 무엇보다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했다. 주택가 골목은 좁아서 차를 정차시킬 곳도 없었지만 뒷 순서때문에 어차피 오래 기다릴 수도 없다. 그래서 픽업 장소에 아이가 보이지 않으면 초조해졌다. 한 손에 핸드폰, 다른 한 손에 연락처를 적어 둔 종이를 들고 불안한 마음으로 시계만 쳐다보았다. 픽업 시간이 1분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차량 기사님은 나한테 연락 좀 해 보라고 채근했다. 다행히 전화를 걸기 전에 아이들은 모두 나왔다.
갑자기 조용하던 차 안에 카톡 진동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웃 아주머니였다. '00이 탔어요?', 'XX이 엄마한테 문자 보냈어요?', '마지막 아이까지 태우고 나면 톡 좀 부탁해요. 학원에 보고하게.' 기껏 나한테 일을 맡기고 가족 행사 때문에 멀리 부산까지 갔으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해 연신 확인하는 중이었다.
새로 왔다는 학원 원장이 많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도 긴장되었다. 셔틀 차량 기사님도 자기 핸드폰을 내밀며 말했다. "마지막 애 태우면 '등원완료'라고 여기 좀 찍어요." 셔틀 단톡방에 보고하라는 말이었다.
학원에서 걸어서 5분, 차로 2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에서 마지막 아이까지 태우자 차는 금세 학원에 도착했다. 3~4명의 선생님들이 학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들이 아이를 하나씩 받아 들며 인사를 건넸다. "헬로우, OOOO" 순식간에 한글 이름이 영어 이름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영어 이름으로 불린 아이는 선생님 손에 이끌려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이웃 아주머니에게 '등원완료' 카톡을 보냈다. 이로써 등원 일은 끝났다.

교복처럼 명품 패딩 입은 아이들










▲  드라마 <라이딩 인생> 속 한 장면. 영어유치원에서 손주들을 기다리는 할머니, 할아버지.


ⓒ ENA




오후 3시. 하교 1타임 시간에 맞춰 나갈 시간이 되었다. 미리 전달받은 차량 번호가 적힌 목걸이와 덧신을 손에 꼭 쥐고 행여 늦을세라 3시 20분까지 원으로 부리나케 향했다. 지시받은 대로 덧신을 신고 4층 강당 겸 체육실에 있자니 1호에서 8호까지 다른 셔틀 도우미분들이 하나둘씩 들어왔다.

셔틀 도우미라고 해도 겉으로 딱히 표가 나는 건 아니었다. 옷차림만 보면 여느 '강남 사모님'과 다를 바 없었다. 가방에, 목걸이에, 세련된 화장까지. 어쩐지 '부티'가 났다. 이분들에게 셔틀 일은 생활비가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자식들 공부가 끝난 후 시간 여유가 생겨서 하는 부업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3시 30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봄이 되니 옷차림이 가벼워졌다. 지난 겨울 대타로 왔을 때의 일이 생각났다. 차량 대기 장소로 몰려 내려온 아이들을 보는 순간 잠시 착각에 빠졌다. 마치 단체로 교복이라도 맞춰 입은 것 같았다. 많은 아이들이 같은 브랜드의 패딩을 입고 있었다. '대치맘' 이수지가 입고 있던 바로 그 명품 브랜드였다. 긴 패딩, 짧은 패딩, 조끼, 검은 색, 남색, 모자 등, 각기 입고 있는 옷 형태와 디자인, 색은 달랐지만, 옷에 붙어 있는 로고는 같은 모양이었다.
그때는 '대치맘' 영상이 나오기 전이었다. 이 브랜드 패딩의 정확한 가격은 몰랐지만 아주 비싸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비싼 옷을 이렇게 어린 아이들조차 예사로 입고 있는 걸 보니 갑자기 내가 강남 한복판의 유치원에 있다는 게 확 실감이 났다.
물론 아이들은 자기가 입고 있는 옷의 가격 따위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비싼 패딩을 입고 친구들과 바닥을 뒹굴고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오히려 보는 내가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런 아이 같은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이제 날이 풀려 다행이었다. 더 이상 똑같은 로고가 달린 옷을 볼 일이 없어졌다.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도, 엄마가 부르면
셔틀 버스와 별개로 부모들이 와서 개별적으로 아이들을 데려가기도 했다. 데리러 오는 사람은 주로 엄마였지만 아빠도 종종 보였다. 간혹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는 경우도 있었다. 엄마, 아빠, 모두 젊고 예뻤다. 엄마들은 모두 모델 같았다. 대낮에 이렇게 오는 아빠들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조금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이 젊은 아빠들은 대부분 양복 차림이 아니었다. 야구모자에 트레이닝 복과 같은 편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원 1타임은 두 명만 타기에 금방 끝났다. 아침에 아빠 어깨에 파묻혀 세상 모르게 자고 있던 아이는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했다.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점심밥은 마음에 들지 않아 다 먹지 않았다고 했다. 옆에서 6살 누나가 젤리를 먹는 걸 보더니 갑자기 배가 고프다고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도 아이의 "배고파" 타령은 그치지 않았다. 누나가 젤리를 나눠주고서야 아이는 조용해졌다.
오후에 아이를 받는 사람들은 이모님이나 엄마였다. 그런데 한 아이를 내려주는데 이모님 두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아이 영어 때문에 고용된 필리핀 이모님이라고 했다. 기사님 말씀으로는 벌써 두 번째로, 첫 번째 사람은 비자가 만료되어 돌아갔다고 했다. 언론을 통해 필리핀 도우미에 대해 듣긴 했지만 직접 보기는 처음이었다. 영어 실력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원 2타임 마지막 아이가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꾸벅꾸벅 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잠에 빠져 버려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다. 흔들어도 보고 이름도 불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차는 이미 도착했고 잠든 아이를 앞에 두고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이름을 부르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부스스 눈을 떴다. 잠이 덜 깬 아이를 엄마 품에 안겨주고 돌아섰다. '하원 2타임 완료입니다.' 이웃 아주머니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이렇게 하루 일이 끝났다.
잠깐 시간을 내어 일한 것 치고 벌이는 괜찮았지만 계속 긴장을 하고 있으려니 피곤했다. 예전 발레 학원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아무래도 어린 아이들을 태우는 데다가 강남 한가운데 있는 영어 유치원이라는 점 때문에 전체적으로 신경이 더 쓰였다. 학원 건물도, 학부모도, 심지어 다른 셔틀버스 도우미 선생님들도 모두 부유해 보여 어쩐지 위축되기도 했다. 반면 아이들의 맑은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건 좋았다.
셔틀 기사님은 버릇없는 애들이 있다며 툴툴거리기도 하셨지만, 내가 일하는 동안 본 아이들은 아이들 그 자체였다. 아무리 비싼 옷을 입었든, 아무리 비싼 학원에 다니든 아직 돈과 동네 이름에 물들지 않은 순수한 얼굴이었다. '그 모습 그대로 커 갔으면' 하고 바랐다. 그런 생각을 뒤로 하고 이제 개운한 기분으로 막 쉬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카톡이 울렸다. 이웃 아주머니였다.
'4월 O일 풀타임, O일 아침 등원만. 가능할까요?'


《 group 》 4050글쓰기 : https://omn.kr/group/4050_writer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