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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호텔 해고자 고진수씨가 지난달 13일 홀로 10m 높이 교통시설 구조물에 올랐다. 하늘 위에서 고씨는 혼자이지만, 그 아래엔 동지들이 모여들었다. 고씨는 “올라갈 때만 해도 한편으론 고립될까 걱정했다”며 “그런데 고공농성 이후 매일같이 ‘말벌 동지’들이 꼭 농성장 아래에 있다. 너무 고맙고 든든하다”고 했다.
복직을 요구하는 고씨의 고공농성 20일째인 4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 고공농성장 아래에는 1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은 자신을 ‘말벌 동지’라고 했다. 누군가는 고씨와 다른 무료상담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였고 누군가는 학생이었고 누군가는 한국인이 아니기도 했지만, ‘말벌 동지’라는 이름은 같았다. 빨간색 노조 머리띠로 머리를 묶은 김아무개(32)씨는 “어디에도 소속된 조합원은 아니”라며 “말벌 동지란 이름이 마음에 든다. 연대가 필요한 어디든 달려가고 있다”고 말했다. 보통 평일 저녁에는 대여섯명이, 주말에는 20여명의 말벌 동지들이 여권발급신청 고공농성장을 찾는다고 한다.



4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 앞에 위치한 고진수씨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채아무개씨가 플루트를 불고 있다. 김해정 기자


‘말벌 동지’는 ‘말벌 아저씨’ 밈(온라인 유행 콘텐츠)에서 온 말이다. 상공인 말벌 아저씨는 2013년 한 방송에 출연한 양봉업자가 인터뷰 중에도 일벌을 죽이는 말벌이 나타나면 뛰쳐나가 잡는 모습에서 붙은 별명이다. 이를 본떠 윤석열 대통령 탄핵 집회 이후 광장에 나온 시민들이 조선소 하청노동자 시위에 동참하는 것처럼, 어떤 현장이든 찾아가 힘을 보태면서 자신을 ‘말벌 동지’로 칭했다.
이날 고공농성장 아래서 만난 근로자서민전세자금대출 한도 채아무개(19)씨는 플루트로 ‘철의 노동자’, ‘임을 위한 행진곡’ 등 여러 곡을 연주했다. 채씨는 “당신과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 연주하고 있다”며 “연주하다 보면 나도 힘이 나고 이곳에 있는 다른 이들의 흥도 북돋을 수 있다”고 했다. 채씨는 “12·3 내란사태 이후 노동자 연대를 이어오고 있다”며 “지금은 대학생이지만 나 역시 미 카드제작 래에 노동자일 텐데, 나를 위해서라도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연대해야 하지 않겠냐”고 했다. 채씨의 연주를 듣던 김씨 역시 “서비스직에서 일하는 같은 노동자로서 동질감을 느낀다”며 “우리가 뭉치면 조금은 세상이 변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바로 옆에서 간이 의자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던 지아무개(23)씨 역시 “그저 고진수 동지가 외롭지 않도록 옆에 있어주려고 농성장을 찾고 있다”고 했다. 영국에서 유학 중이라는 지씨는 일주일에 세번 정도 농성장을 찾아 3~4시간 동안 머문다. 그는 “생각 없이 시간 보내는 데 뜨개질만 한 것도 없다”며 “뜨개질로 피켓을 만들어 고진수 동지에게 주려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7월에 다시 영국으로 돌아가는데 그 전까진 동지가 땅을 밟으면 좋겠다”며 뜨개질을 이어갔다.
이날 ‘말벌 동지’ 일부는 연대가 필요한 곳을 찾아가겠다며 동덕여대 집회와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천막 농성장으로 향했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