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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국상망재 댓글 0건 조회 0회 작성일 25-05-1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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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깜박였다. 여태 해 있는 정. 왔음을[창간 30주년 기획] 성역이었던 언론계 비판하며 존재감 드러내...미디어 환경 변화 흐름 속에 비평과 취재 대상 넓어져
[미디어오늘 장슬기, 정철운 기자]



▲미디어오늘 30주년 로고.



'언론의 언론'은 어떻게 출발했나

미디어오늘 창간 배경을 보려면 1994년 6월 철도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독재·반공세력과 타협한 김영삼 정부는 노동조합에 대한 강경 진압 기조를 유지했고 노동계는 민주노조 설립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각에서는 당시 어용으로 평가받던 한국노총(한국노동조합총연맹 작은깜자 )을 민주화하자고 주장했지만 상당수 노동자들은 새로운 민주노조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권력은 서울신문 파리특파원 출신이자 전국노동조합대표자회의 공동대표였던 권영길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 위원장을 예민하게 주시했다. 노조 활동 상당수가 불법이던 시절 권 위원장은 다른 사업장 노동자의 연대를 불법화하는 '제3자 개입금지 조항(20 고등학생 국가장학금 06년 폐지)'으로 수배 대상이 됐다. 철도노동자들의 투쟁은 실패로 돌아갔고, 권 위원장은 수배 생활을 지속하다 서울신문에서 해고됐고 끝내 구속됐다.
당시 조선일보 등 주요 신문사들이 소속된 언론노련 위원장이 노동사(史) 한 대목을 쓰고 있었지만 대다수 언론사는 소극적으로 보도하거나 권력의 관점으로 사안을 다뤘다. 1987년 6월항쟁과 하나다올자산운용 7~9월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진행하던 '민주 언론 만들기'의 한계였다.
87년 정치적 민주화 이후 언론계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87년 10월 한국일보 노조 출범을 시작으로 주요 언론사가 노조를 만들었고, 1988년 언론노련 결성과 함께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해 한겨레신문을 창간했다. 각 지역에선 1988년 홍성신문을 시작으로 1989년 2014년 당좌대출이자율 옥천신문 등 주민들이 주주로 참여한 풀뿌리 지역신문이 등장했다. 언론노련은 1989년을 '언론해방투쟁' 원년으로 선포하고 노조 사수와 편집권 독립을 내걸고 투쟁을 이어가 1993년 법원에서 '합법노조' 지위를 받아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94년 권영길 위원장을 비롯해 언론노련 산하 신문·방송 노조위원장들까지 철도노조 연대를 위한 철야 개인회생면책 농성에 참여했지만 어느 언론에도 기사 한 줄 나가지 않았다. 이에 언론노련을 중심으로 언론계의 잘못된 내부 관행을 알려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커졌다. 독재정권과 유착되면서 형성돼 온 잘못된 취재·보도 행태, 필요한 기사를 외면하고 권력에 눈치 보는 악습을 청산하기 위한 새로운 매체가 필요했다.
김영신 언론노련 위원장 직무대행은 새 매체 창간을 추진했다. 김영신 대행과 이광호 당시 언론노련 정책국장은 전국을 돌며 새 매체 창간과 민주노조 설립에 대한 조합원들의 의견을 모았다. 이광호 국장에 따르면 기존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 권영길 위원장의 수배, 김영신 대행의 추진력이란 세 요인이 맞물리며 새 매체 창간 논의가 힘을 얻었다. 새 매체 이름을 언론노련에서 공모했고 최해운 전 한국일보 노조위원장이 제안한 '미디어오늘'이 채택됐다.
최해운 전 위원장은 “미디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기록하는 미디어 전문지로서 적당한 이름을 고민했고 항상 업데이트된 느낌을 줘야 한다는 뜻에서 '오늘'이라고 붙였다”고 말했다. 손문상 화백이 당시 언론사 제호로는 파격적으로 '오늘'을 흘림체와 붉은색으로 만들었다. 손 화백은 미술용 붓으로 직접 썼고 언론계 핫이슈를 보도하는 언론이란 점을 강조하려 빨간색을 택했다고 한다.
이광호 정책국장이 초대 미디어오늘 편집국장을 맡았다. 그렇게 1995년 5월17일 국내 최초 대중적 미디어 비평지 미디어오늘이 창간호를 발행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11일 민주노총이 탄생했다. 이광호 국장은 “(조합원들 사이에서) 새 매체 창간을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드러내놓고 반대하는 의견도 거의 없었다”며 “(언론노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압도적 다수가 찬성했다”고 회상했다.
미디어오늘은 정권의 노동 탄압으로 언론노련 위원장이 해고와 구속까지 되는데도 다수 언론이 날카롭게 비판하지 않았던 사건을 계기로 언론노동자들이 직접 만든 최초의 미디어 전문지였다. 언론계 내부 자정 운동이었기에 자연스레 업계 내부 비판과 함께 대안언론의 역할도 맡았다. 이후 편집국 안팎에선 미디어오늘의 정체성이 '미디어비평지냐 대안언론이냐'를 두고 한동안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언론노조에서 독립한 미디어오늘
창간 4년 만인 1999년 5월26일 언론노련은 집행위원회에서 미디어오늘 위상을 '매체 비평지'로 분명히 하고 독립채산제 실시를 결정했다. 이는 언론노련의 기관지 성격을 강화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봉쇄시킨 결정이었다. 당시 언론노련 소속 여러 노조에서는 미디어오늘이 자신들 매체를 비판할 때 강하게 항의했는데 언론노련으로부터 경영 독립이 이뤄지지 않았으니 미디어오늘 편집국에서 이를 버텨내기 어려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당시 최문순 언론노련 위원장(당시 MBC기자)은 미디어오늘의 열악한 재정을 자체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한국기자협회장을 지낸 남영진 한국일보 기자에게 미디어오늘 사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남영진 당시 미디어오늘 사장에 따르면 최문순 위원장이 찾아와 '신문은 신문쟁이가 해야 할 것 같으니 미디어오늘을 살려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언론노련 각 지부에 구독 부수가 있으니 광고 영업에 집중하면 언론노련으로부터 독립해서 경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 위원장과 남 사장은 편집권 독립도 약속했다. 그렇게 7월1일 남영진 사장이 취임했고 이후 처음으로 기자 공채도 진행했다.
2000년 언론노련은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하면서 민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으로 자리잡았다. 그리고 미디어오늘 창간 직전인 1995년 3월9일 휴간했던 언론노련 기관지 언론노보를 그해 3월22일 복간했다. 미디어오늘과 언론노조 기관지 언론노보의 명확한 역할 분리였다. 미디어오늘 대주주가 언론노조인 점 때문에 언론노조로부터 기자들이 월급 받는 것으로 오해하는 이들도 종종 있는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물론 미디어오늘 대표이사 사장 선출에는 여전히 대주주인 언론노조의 영향력이 작용했다. 하지만 2016년 사장추천위원회를 도입하며 사장 선임구조에서도 언론노조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사추위에는 미디어오늘 노사 공동 추천 위원과 학계 추천 위원 등을 포함했다. 이 무렵 미디어오늘 발행인도 기존 언론노조 위원장에서 미디어오늘 사장으로 바뀌었다.
이런 가운데 미디어오늘 내부의 편집권 보장 움직임도 있었다. 2003년 1월24일 미디어오늘은 노동조합 창립식을 열고 신미희 당시 취재부 차장(현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을 초대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미디어오늘 노조가 언론노조에 가입하면서 언론노조는 미디어오늘의 대주주이자 미디어오늘 노조의 상급단체라는 이중적 지위에 놓이며 현실적으로 편집권 독립이 완성됐다. 미디어오늘 노조는 2012년 10월29일부터 11월1일까지 4일간 창간이래 첫 파업을 통해 편집권 독립을 위한 주요 장치인 편집국장 임명동의제를 제도화하기도 했다.



▲과거 미디어오늘 1면 모음.



“대기업 홍보실도 즐겨 보는 신문”

창간호에서 안기부(현 국정원) 내 언론 담당 부서와 언론사 전담 기관원 명단을 공개하면서 창간한 미디어오늘은 성역이었던 언론계를 비판하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이광호 초대 편집국장에 따르면 특정 언론사를 비판한 기사를 싣자 해당 언론사 쪽에서 지하철역 가판대에 깔린 미디어오늘 지면을 전량 구매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때 “대기업 홍보실도 즐겨 보는 신문”이란 평가도 나왔다는 후문이다.
신문·방송사 내부의 공정 보도 투쟁과 미디어산업의 구조적 문제가 미디어오늘을 통해 대중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창간호부터 연재한 '신문자본 연구' 기획기사는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해 종속되어 온 한국 언론사를 서술했다. 1997년에는 김영삼정부의 실세 김현철씨의 언론계 사조직 실체를 파헤치며 문민정부의 언론 통제를 비판했다. 기자사회의 접대문화와 기자단·출입처 보도자료 중심의 취재관행도 지속적으로 비판했다. 출입처 난동, 촌지·성추행 등 언론인의 부정부패는 미디어오늘의 주요 아이템이었다. 2000년에는 족벌체제로 운영되는 8개 중앙언론사 사주일가의 병역 현황을 조사해 대상자 19명 가운데 8명이 면제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1998년 미디어오늘은 조선일보 '공산당이 싫어요'(1968년) 기사의 오보 가능성을 제기하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사회를 지탱하던 반공이데올로기의 상징을 부수는 시도였다. 기사를 쓴 미디어오늘 김종배 기자는 조선일보와 10년 가까이 소송전을 펼쳤고, 무죄를 선고받았다. 미디어오늘이 지속적으로 오보를 추적하고 보도함에 따라 언론계에 만연했던 '오보은폐' 관행은 점점 사라졌고, 오보를 인정하고 타사의 오보를 지적하는 문화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2005년 MBC PD수첩팀이 줄기세포 논란과 사이언스지 논문 조작 의혹을 제기한 뒤 대다수 언론은 제작진의 취재 윤리와 방송 내용에 의문을 제기하며 황우석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대변할 때 미디어오늘은 PD수첩의 문제 제기가 언론자유 측면에서 용인돼야 한다며 제작진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가 PD수첩 제작진에게 가했던 사법적 보복, YTN·KBS·MBC 등 주요 방송사를 낙하산 인사로 장악해 공영방송을 망가뜨리는 과정도 모두 기록하고 각종 특별판을 제작해 알리는 등 유례없는 언론장악에 맞섰다.



▲언론을 비추는 언론, 미디어오늘 30년. ⓒ박순찬 화백



30년간 달라진 미디어 환경, 달라진 취재 대상

지난 30년간 미디어 환경은 30년 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달라졌다. 미디어오늘 창간 당시 언론계 핵심 이슈는 김영삼 정부가 무리하게 민영방송(상업방송)을 추진하는 일이었다. 1991년 SBS와 1995년 지역민방을 출범했고 이 과정에서 정권의 특혜 논란이 이어졌다. 이는 광고시장을 둘러싼 이해관계와 생존 논리가 방송계를 덮치게 된 출발점이었다. 1995년 케이블TV 탄생도 같은 맥락이었고, 외주(독립)제작 의무 편성 제도로 방송사 내부에도 경쟁 원리가 침투했다는 평가다. 신문사들의 판촉 전쟁도 1990년대 주요 화두였다. 1990년대 말 IMF는 대다수 언론계를 위태롭게 했으며, IMF 이후 방송사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민주적 정권교체에 성공한 김대중 정부를 향해 시민사회는 강력한 언론개혁을 요구했다. 1999년 방송개혁위원회가 등장했으나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 시민사회의 '안티조선' 운동 속에 2001년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가 이뤄졌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층적이다. 당시 미디어오늘은 “언론탄압”이라는 조중동의 주장을 반박했다.
참여정부는 언론개혁을 적극 시도한 정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1년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언론개혁은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편집권과 인사권의 독립이 우선이며, 언론간의 경쟁은 보도의 품질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기자실 폐쇄(출입처제도 폐지)'는 참여정부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언론정책인데, 이는 전 언론계의 거센 반발을 불렀다. 열린우리당은 론관계법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포함한 언론피해구제법을 추진했으나 실패했다. 지역신문발전위원회를 만들어 건강한 지역언론 육성 틀을 만든 점은 작은 성과였다.
이명박 정부에선 2009년 미디어법 날치기 사태로 보수 신문사들이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정권 특혜' 논란이 불거졌다. 2012년 유례없는 MBC의 170일 장기 파업이 이어졌고, 이 시점 이후 언론계는 박근혜정부에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70위를 기록하는 등 암흑기를 거쳤다. 이런 가운데 주요 방송사와 신문사들은 극심한 생존경쟁에 내몰렸다. 특히 방송계 비정규직 차별 문제는 은폐하기 어려울 정도로 곪아 터졌다.
박근혜 탄핵으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 여당은 참여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언론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진했으나 또다시 실패했다. 참여정부의 '나쁜 언론 솎아내기' 전략이 '언론탄압'으로 귀결된다는 실패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선 진보언론을 가리키는 '한경오'라는 일종의 멸칭이 등장하며 '언론혐오'와 언론인을 상대로 한 폭력이 언론계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에선 언론자유의 후퇴와 공영방송의 해체가 진행되었다. YTN을 민영화(사영화)시켰고, KBS 수신료 분리 징수를 강행해 재정적 기반을 흔들었다. 서울시에선 김어준씨 등 일부 진행자를 빌미 삼아 TBS를 폐국 내지 민영화 문턱까지 내몰았다. MBC 민영화 주장은 공론장에 올렸다. 기자들은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되고, 방송사는 '김건희 특검'에 '여사' 표현을 붙이지 않았다고 행정지도를 받았다. 이렇듯 30년간 벌어진 수많은 언론계 사건 사고에서 미디어오늘은 비판의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난 30년간 큰 미디어 환경 변화 흐름 속에 미디어오늘의 비평과 취재 대상도 매일 넓어지고 있다. 언론노조로 조직된 여러 레거시미디어 사업장의 다양한 노동자들은 여전히 유효한 취재원이지만 더 많은 시민은 새로운 미디어로 소통하고 있다. 2000년대 진보적 인터넷 매체들이 창간했고 2010년대 이후로 스마트폰에 기반한 팟캐스트, 유튜브 등 플랫폼이 대안 미디어로 등장했다. 풀뿌리 독립언론 등 노조로 조직되지 않는 언론에도 열정적 독자와 시청자가 있다. 새롭게 등장하는 취재 대상과 달라진 취재 대상 앞에서 편집국은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언론 비평이 더 이상 미디어오늘만의 영역이 아니라는 점도 미디어오늘에겐 넘어야 할 과제다.
이런 가운데 포털에 종속된 기사 생산 구조는 저널리즘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생성형AI로 상징되는 정보 플랫폼의 급성장과 허위정보나 선정적 콘텐츠가 무차별적으로 생산·확산하는 온라인 환경은 뉴스 공급자와 이용자 모두에게 위협이다. “권력·자본을 뛰어넘어 진실되게”란 1995년 미디어오늘 창간사 제목은 30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혹은 지금 더 절실하게 유효한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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